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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시에서 내렸다는데, 자리 옮길겸 지금 나가죠? - 망설임없이 깨끗한 정현의 목소리는 자꾸만 설의 심장을 찌른다. 찌르지마 아파, 아무리 올려다 보아도 자신과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려는 정현때문에 찔린 심장에서 스물스물 화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물에 젖은 스펀지 마냥 몸이 무거워 일어서는 것 조차 힘겨웠지만 멀뚱이 정현만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는 일행들 때문에 아무렇지 않은 듯 입가에 미소를 지은채 몸을 일으켜 세웠다. 느릿느릿, 최대한 시간을 끌고 싶다. 설이 참 좋아하는 등이지만,오늘만큼은 그의 등이 참 밉다. 뻔뻔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에게 이끌려 자신의 사람을 불러야만 했었다. 물론 피하자면 피할수도 있었지만 언제나 이 사람들은 단 한번도 보여주지 않고 있는 자신의 사람을 너무나 궁금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무지 피할수가 없었다. 눈을 마주보지도 못하는 주제에 할수 있는 거라고는 뻔뻔해지는 것. 단지 아무렇지 않은 듯 울고 있는 눈을 향해 뻔뻔하게 아무것도 모른척 하는 것밖에 할수는 없다. 결국은 가게앞을 나서자 마자 내 이름을 부르며 할짝 웃는 얼굴로 내 팔짱을 끼는 내 사람을 향해 웃어주며 설의 눈을 피해버렸다. 먼저 가겠다며 돌아서는 그 뒷모습이 내 눈엔 너무 당당해 보였다면 나를 위한 어리석은 착각이었던걸까
오랜만에 정말 미치도록 울어봤다. 눈을 뜨고 가만히만 있어도 쏟아지는 눈물에 주체를 하지 못해 결국은 입술을 깨물고 목이 아프도록 끅끅거렸다. 우습게도 그렇게 울면서 걱정되던건 아침에 일어나 거울속에 비춰질 내 부은 얼굴과 눈이었다. 정말 우습게도. 울다울다 지쳐 잠들어 일어난 거울속에 나는 다행이도 걱정되던 부은 얼굴과 눈은 아니었다. 단지 쉬어버린 목이었다. 정말 오래만에 미치도록 울어버렸다.
사무실에서 집까지 그렇게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움직이는 무언가에 몸을 맡기기엔 조금은 애매모호한 거리다. 그래서 늘 피곤에 지친 발걸음을 끌고 늦어도 걸어서 퇴근을 한다. 바람한점 불지 않는 저녁시간, 얼마만큼 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아주 오랜만에 8시가 조금 못되어 퇴근을 할 수 있었다. 일찍 퇴근을 한는 것을 어찌 알았는지 거하게 한잔 하자는 친구들의 전화도 살포시 무시해준채 서둘러 집으로 들어갔다. 끈적거리는 몸을 시원한 물로 씻어내고도 싶었지만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게 더 절실했던 설은 욕조가 없는 자신의 작은 원룸을 원망하며 오랜만에 꺼둔 보일러를 켜야 했다. 땀으로 온통 끈적이는 몸이었지만 미지근한 물에 씻어낸 몸은 포송포송한 기분이 들었다. 7~8평남짓한 작은 방, 한쪽을 차지한 베란다를 활짝 열어놓고 선풍기를 틀어놓은채 얇고 까실한 이불속으로 몸을 맡겨버렸다. 찌는듯한 더위가 가득한 바람한점 불지않는 8월인데도 따뜻한 물에 몸을 씻은 후 덮은 이불은 너무나 포근하기만 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안식의 시간, 자신도 모르게 스스르 눈이 감겨오기 시작했다. 틀어놓은 TV소리는 다른 세계의 속삭임 같다. 머리 위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다. 의식과 몸이 반쯤 떨어졌을 몽롱한 기분에 저절로 웃음이 나오려 하는 순간 전화벨소리가 들여왔다. 분리되어있던 의식이 몸속으로 빠르게 흡수되어버렸다. 전화벨소리로 누군가의 전화인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기에 설은 망설임없이 이불속에서 꼼지락 거리던 손을 전화기로 뻗었다. - ... 굳이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귓가로 전해져 오는 숨소리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 뭐해? 앞에 편의점이야 더운데 시원한 맥주먹자 - 대답을 할 필요도,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서로의 전화기로 전해지는 작은 웃음소리는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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